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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희의 같은 하늘 다른 세상- 눈물샘이 마를 때까지

젖어 있는 것이 하늘뿐이랴. 슬픈 것들은 젖어 있다. 하늘과 땅이 흐느끼는 동안 나무는 온 몸을 떨며 가지마다 눈물 방울을 매달고 풀잎은 땅 속에 머리 파묻고 눈물로 대지를 적신다. 슬픔을 견딜 수 없을 때는 구름은 천둥 번개로 심장을 찢는다.   혼자일 때는 잘 견디며 버티다가 누가 곁에서 달래면 눈물이 한없이 쏟아진다. 슬픔은 사랑처럼 공유하면 부피가 커진다. 슬픔은 전염병처럼 번져 나간다.   어릴 적 천방지축으로 잘 넘어져 무릎 성할 날이 없었다. 곁에 아무도 없으면 벌떡 일어나 흙을 털고 집으로 갔다. 멀리서 ‘밥 먹어라’ 부르는 엄마 목소리가 들리면 땅바닥에 코를 박고 아픈 시늉을 했다. 어머니 약손이 긁힌 자국의 흙을 털어내고 호호 불어주면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이젠 아무도 내 상처에 입김을 불어주지 않는다.   인생은 짧고도 긴 파노라마다. 변화와 굴곡이 많고 감동과 좌절, 반전과 역전이 끝없이 펼쳐진다. 인생의 파노라마는 한 번 지나면 재생이 불가능한 지극히 개인적인 필름이다.   파노라마(Panorama)는 본래 큰 전망이라는 뜻이다. 전체 경치 중에서도 360° 방향의 모든 경치를 담아내는 기법이나 장치, 그렇게 담아 낸 사진이나 그림을 의미한다. 전경(全景)은 180° 시야에 들어오는 경치를 말하고 환경(環景)은 360° 시야에 들어오는 경치를 가리키는 말이다. 파노라마는 둥근 모양의 건물 안의 벽에 전방위(全方位)로 풍경화를 그려 넣어 마치 그 건물 안에서 실제 풍경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파노라마로 남는다. 딸 대학 졸업 기념으로 떠난 파리 여행은 추억의 창고에 영원히 살아 숨쉬며 아름다운 그림으로 남아 있다. 루브르 박물관, 오르세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등을 딸과 손잡고 관람한 아름다운 날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추억의 창고에 보석처럼 빛난다.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1840-1926) 앞에서 딸은 한동안 망부석처럼 숨도 쉬지 못한 체 서 있었다. 1920년 프랑스 정부는 오랑주리 미술관에 한 쌍의 타원형 전시실을 마련해 모네의 수련 벽화 8점을 상설 전시했다. 전시실은 모네가 죽은 지 몇 달 뒤인 1927년 5월 16일 대중에 처음 공개된다. 1999년에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모네 특별전을 기획하여, 전세계 60여점의 수련 그림이 한 자리에 전시되었다. 지베르니의 모네 생가에 있는 수련 정원을 그린 그림으로 1890년대부터 1920년대 까지 30여년 간 오랜 세월 동안 그린 작품이다.     작품 중 대다수는 모네가 백내장을 앓고 있던 상태에서 그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백내장 수술 후에도 모네는 시력이 감퇴돼 색깔 분별이 어려워지고 두 눈으로 동시에 볼 수 없게 된다. 사물이 왜곡되어 보였지만 모네는 죽는 날까지 빛을 그리는 화가로 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어릴 적 내 별명은 ‘울보’였다. 눈물 샘이 잘 발달된 탓인지 작은 바람, 꽃 향기에도 눈물을 흘렸다. 일 년에 한 두 번 시골 마을의 천막 친 가설 극장에서 흑백영화가 상영되면 동네 어른들 손잡고 공짜로 입장했다. 앞자리에 앉아 ‘유정천리’를 보며 눈물이 뒤범벅이 돼 울고 있으면 “눈꼽만한 것이 뭘 알고 우느냐”며 혀를 끌끌 찼다.   이젠 잘 울지 않는다. 울지 않고 견딘다. 아파도 눈물을 삼키는 법을 터득했다. 나이 들면 눈물샘이 마를 때까지 슬픔은 가슴을 타고 흘러내린다.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을 참고 견디며 눈물샘은 울지 않는다.   인생이란 한 편의 파노라마를 완성하기 위해, 꼬꾸라지면 풀잎이라도 잡고 일어나 슬픔에 길든 눈물 지우고, 그리움이 새겨진 엽서 한 장 그대 창가에 띄운다. (Q7 Editions 대표)   이기희이기희 눈물샘 달래면 눈물 눈물 방울 클로드 모네

2025-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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